[서울=RNX뉴스] 박지훈 기자 = 의령군은 삼국시대 당시 지리적 거점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낙동강 서안의 유곡산성에 대한 학술조사에서 성벽과 내부 집수시설 그리고 5세기 중․후반으로 편년되는 다량의 유물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의령 유곡산성은 1994년『의령의 선사ㆍ가야유적』에 처음 소개된 이후 지난 2017년 가야사 복원사업과 관련하여 비지정 문화재인 유곡산성과 유곡리고분군에 대한 정비ㆍ보존계획 수립을 위해 정밀지표조사 실시한 바 있다.

이번 발굴(시굴) 조사는 정밀지표조사를 바탕으로 의령지역 가야사 복원의 실체규명을 위한 일환으로 실시했다.

조사기관인 (재)두류문화연구원(원장 최헌섭)은 이번 조사에서 가야 산성(석성)의 내ㆍ외벽과 구상유구, 주혈, 해수산패각, 석렬, 통일신라시대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되는 집수시설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산성의 하부 문화층에서 확인된 해수산패각의 존재는 당시의 자연환경과 고고지리 연구의 단초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체성은 높이 1.5m(5~6단) 정도 잔존하며, 내ㆍ외벽의 너비는 3m 정도다. 외벽은 다듬지 않은 할석을 사용하여 허튼층쌓기 방법으로 조성했으며, 벽석 사이의 공간에는 점토를 사용하여 축조했다.

이러한 축조방법과 체성의 너비는 일반적인 신라 성곽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양상이다.

체성을 처음 쌓은 시기는 체성 하부와 내ㆍ외에서 출토된 유물로 파악할 수 있다. 주요한 유물은 대부파수부완(다리와 손잡이가 달린 접시)ㆍ개(뚜껑)ㆍ기와편 등이다.

작은 조각으로 출토된 유물들은 인접한 유곡리고분군에서 출토되는 합천 다라국과 고령 대가야계의 토기와 유사하여 그 시기는 5세기 중ㆍ후반 경으로 보인다.

집수지는 지형 상으로 성내의 유수가 모이는 남쪽 체성의 안쪽에 위치하며, 평면 방형계로 보인다.

현재 집수지의 축조 시기는 파악하기 어려우나, 집수지의 폐기층에서 선문이 시문된 두께 2cm 정도 기와편이 확인되어 통일신라시대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가야시대의 고령 주산성, 합천 대야성ㆍ초팔성, 함안 칠원산성ㆍ안곡산성 등이 조사되어 가야 산성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정립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낙동강의 서쪽 방어선에 축조된 의령 유곡산성은 가야 산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작권자 © RNX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