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간 유해 50여 구 발굴…국군 추정 첫 '완전유해'도 나와
"머리 위에 포사격 요청하며 고지전"…녹슨 철모에 총탄자국 '수두룩'
北, 공동발굴 요청에 무응답…유해발굴 상황은 면밀 모니터링

(철원=연합뉴스) 국방부 공동취재단·이준삼 기자 = "지난 4월 12일 발굴된 철모 안에서는 부서진 두개골 조각이 발견됐습니다."

지난 28일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화살머리고지에 있는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

강재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장(상사)은 이곳 동굴진지에서 발견된 국군 추정 유해를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가 취재진에게 보여준 철모는 큰 충격을 받아 완전히 찌그러진 상태였다.

국군 2사단 참전용사들 증언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이른바 '동굴작전'이 감행됐다.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밀고 올라오면 진지에 숨은 뒤 자신들의 위치로 포사격을 요청해 적을 섬멸하는 목숨을 건 작전이었다.

강 상사는 "당시 1천 발 정도의 포탄이 이곳에 떨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금속 반응들이 잡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철원 평야의 하늘은 유난히도 맑았다. 비무장지대(DMZ)의 짙푸른 녹음과 군사분계선(MDL)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역곡천. 이곳에서 60여년 전 그토록 처참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 나지 않는다.

화살머리고지는 백마고지 남서쪽 3km 지점에 있는 해발 281m의 고지다. 화살 머리처럼 남쪽으로 돌출돼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반도 중앙에 위치한 이곳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1951년 11월부터 휴전 직전인 1953년 7월까지 4차례나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격렬한 고지전이 전개됐던 배경이다.

군 관계자는 "철원 평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백마고지"라며 "백마고지를 확보하려면 반드시 인접한 화살머리고지를 점령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국군 제9사단과 2사단, 미군, 프랑스군 대대가 고지전에 참여했고, 그중 300여 명이 전사했다. 북한군과 중공군 사망자는 3천여 명에 이른다.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 현장은 가파른 산 사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초발굴 현장 초입에 설치된 노란색 선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뢰 제거가 완료됐음을 알리는 표시였다

6·25 이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 전사자 유해발굴의 최대 난관 중 하나는 이처럼 지뢰를 완벽하게 제거해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5사단 131공병대대장 이정대 중령은 각 구역을 일정한 간격으로 나눈 뒤 '숀스테드'(지뢰탐지 기초장비), 예초기, 송풍기, 지뢰탐지기, 공기압축기를 차례로 사용해 지뢰를 찾게 된다며 5∼6단계에 이르는 지뢰제거 절차를 설명했다.

보호의, 지뢰화, 헬멧, 방탄조끼 등 장병들이 착용하는 장비무게는 모두 합쳐 20㎏이나 된다. 이들은 지금까지 149발의 지뢰와 2천400여 발의 불발탄을 제거해냈다.

지난달 1일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 화살머리고지에서는 계속해서 많은 유해와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현장 관계자는 지금까지 54곳에서 325점의 유해(전사자 시신 50여 구 추정)를 발굴하고, 모두 17구의 유해를 수습해 중앙감식소로 보냈다고 소개했다.

특히 지난 24일에는 국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완전유해'도 발견됐다. 이 유해 주변에서는 국군 하사 철제 계급장과 철모 등이 발굴됐다. 유해의 쇄골 부근에서 인식표 줄도 나왔다.

남북공동유해발굴 TF 단장인 문병욱 대령은 "'육군참모…'라는 문구가 희미하게 보이는 증명서도 있었다"며 "현재 감식팀에 넘겨 분광기 엑스레이 촬영기로 정밀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굴된 유품은 모두 2만 3천여 점에 달한다. 그중에는 프랑스군 인식표 1점과 미군 방탄복 5점 등 외국 참전용사들의 유품도 적지 않다.

이 유품들은 저마다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녹슨 철모에는 총알 자국으로 보이는 구멍이 6개나 뚫려 있었다. 총알이 23발이나 관통했다는 금속제 수통도 있었다.

M1 탄알, 60㎜ 고폭탄, MK-2 수류탄, M1 총열 등 국군과 미군, 유엔 참전국 군인들이 사용하던 무기뿐 아니라 TT탄창, 막대형 수류탄, RPG-6 대전차 수류탄 등 북한군과 중공군의 무기들도 다수 발굴됐다.

문 대령은 "M1 총열 안에는 아직 탄까지 남아있었다"며 "총을 다 쏘지도 못하고 산화하신 분의 유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날 화살머리고지 능선에서는 북한군이 작년에 지뢰 제거 등을 위해 조성했던 오솔길도 보였다. 그러나 북한 군인들은 아직 유해발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남북 공동의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은 '9·19 남북군사합의서'의 주요 내용 중 하나였다.

남북은 발굴에 앞서 작년 말 각자 군사분계선 방향으로 지뢰 제거 작업을 진행한 뒤 12m 폭의 도로도 개설했다.

그러나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여파로 올해 예정됐던 군사합의 이행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유해발굴에 대해서도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남측의 단독 유해발굴 작업은 곧 3개월째에 접어든다.

국방부는 그러나 여전히 남측 단독 유해발굴이 아닌 '남북 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사전준비' 차원의 기초발굴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이 조속히 동참해주기를 기대하는 뜻도 담겨있는 셈이다.

북한은 '공동발굴' 요청에는 반응하지 않고 있지만, 남측의 유해발굴 상황에 대해서는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령은 "남북이 합의만 하면 당초 예정됐던 지역을 올해 안에 다 끝낼 수 있다. 일부 (우리측 전사자 유해발굴) 지역은 북측에 있는 상황"이라며 조속한 남북 공동의 유해발굴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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