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전선 공사 중 추락…뇌사 판정에 4명에 장기 기증하고 떠나
유가족 "막을 수 있던 人災" 분통…책임 있는 사과·재발방지대책 요구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안전장비만 바꿔줬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는데…"

최근 강원도 인제에서 고압전선 가설공사를 하던 30대 청년이 추락사고로 사경을 헤매다 뇌사 판정을 받고 4명에 새 생명을 주고 떠난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유가족은 "사고 당시 착용했던 안전장비가 불량이었음에도 교체 요구를 뭉갠 탓에 일어난 인재(人災)"라며 소속 회사의 책임 있는 문제 인식과 사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유가족에 따르면 지난 3일 오전 11시 27분께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에서 고압전선 가설공사를 하던 송모(30)씨가 추락사고를 당했다.

머리를 심하게 다친 송씨는 수술을 받았으나 깨어나지 못하고, 2주가 지난 17일 뇌사 판정을 받았다. 송씨 가족은 송씨가 회복 불가라는 사실을 듣고 장기를 기증했다.

유가족은 송씨의 죽음이 불량 안전장비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의 장비는 일명 '도지나'라고 불리는 '주상안전대'로 추락위험이 있는 배전, 송전, 통신공사 등 작업에 사용된다.

줄과 벨트를 연결해 사용하는 장비다. 송씨가 최근 회사로부터 받은 이 장비가 줄과 벨트가 제각각인 '짝짝이'인 탓에 제대로 결속되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 유가족의 주장이다.

유가족에 따르면 송씨는 이 주상안전대를 받은 뒤 동료들로부터 "너 이거 차고 일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 회사에 장비를 바꿔 달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결국 불량 장비에 몸을 맡기고 일하던 송씨는 "서울로 가서 장비를 구매하겠다"고 결심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사고를 당했다.

유가족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며 억울함을 풀기 위해 생업도 포기하고 장례식을 미룬 채 빈소를 지키고 있다.

송씨의 형(33)은 "회사에서는 도의적임 책임만 지겠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회사에서 문제를 제대로 짚고, 대표가 와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약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족은 또 "해당 장비는 한국전력 안전검사에서도 통과돼 사용 가능 허가가 내려진 상태였다"며 "사용을 허가한 한전 관계자들도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송씨는 한전 협력사인 이 회사 소속으로 1년 6개월여간 일했다. 주로 지상에서 작업을 돕던 그는 최근 배전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 주상 작업에 투입됐다.

그의 형은 "동생은 혼이 나도 '잘하겠습니다'며 웃을 정도로 구김살 없고, 가족들을 소중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가족이 이 같은 사연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자 회사 측에서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는 회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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