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4년간 폐철로에 산책로·조형물 설치…100년 만에 시민 품으로

(포항=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따뜻한 햇볕이 내리쬔 1일 오후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이 나들이 나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근로자의 날 휴일을 즐기려고 이곳에 나온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긴 곳은 철길이다.

철길에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온 부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운동복을 입고 달리는 시민, 자전거를 타는 중년 남성들이 어우러져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나들이 장소가 철길이라고 한다면 다른 지역 주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포항시민 사이에서는 철길 나들이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전국에서 보기 드문 철길숲이 이곳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철길숲은 말 그대로 철길을 활용해 만든 숲이다.

철길이 숲으로 변한 사연은 간단하다.

2015년 4월 도심에 있던 동해남부선 포항역이 KTX 신설과 함께 외곽지인 북구 흥해읍 이인리로 이전했다. 1918년 10월 포항과 경주를 잇는 철길이 개통된 이후 약 100년 만에 옮긴 셈이다.

더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포항시가 숲과 공원으로 만들었다.

사연은 간단할지 몰라도 철길이 숲으로 변하는 데는 많은 돈과 노력이 들어갔다.

시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추진한 철도유휴부지 활용사업에 철길숲을 제안해 철도부지를 사지 않고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땅을 사들이지 않아 아낀 돈만 해도 200억원에 이른다.

시는 40여회에 걸쳐 주민 의견을 수렴해 근대 유산인 철도 시설을 최대한 유지한 채 숲을 만들기로 했다.

2015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4년간 258억원이 들어갔다.

포항시 남구 효자역 인근 효자교회에서부터 북구 대흥동 옛 포항역까지 4.3㎞ 구간, 12만㎡ 면적 철길을 정비하고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만들었다.

나무와 꽃을 심고 조형물을 배치했으며 화장실, 음악분수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시는 4일 오후 2시 효자동 효자교회 앞 광장에서 철길숲 준공식을 한다.

준공식을 앞두고 효자동 철길숲 시작점에서 운동화 끈을 묶고 천천히 걸어봤다.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당산나무다. 2017년 효자동 7번 국도 확장 공사로 옮겨 심은 팽나무다.

철길은 침목까지 그대로 보존한 곳, 시멘트로 메운 곳, 흙과 꽃으로 덮은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철길 맨 윗부분은 노출해 철길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끔 했다.

대잠고가차도와 성모병원 앞길을 지나자 땅에서 불이 타오르는 광경이 나타났다.

불꽃은 2017년 3월 8일 철길숲을 만들던 공사업체가 굴착기로 지하 200m까지 지하수 관정을 파던 중 땅속에서 나온 천연가스에 붙은 불이다.

금방 꺼질 것이란 예측과 달리 계속 타오르자 시는 발상을 전환해 현장 주변을 아예 공원으로 만들었다.

불길이 붙은 굴착기와 주변 흙 등 현장을 보존하고 주변에 강화유리를 설치해 외부에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천연가스 분출 과정을 담은 안내판도 설치해 '불의 정원'을 완성했다.

불의 정원은 포항시민은 물론 출향인과 관광객도 한 번쯤은 찾아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됐다.

바로 옆에는 예전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서 우주 공간을 달리는 열차처럼 하늘을 향해 치솟는 듯한 형상을 띤 증기기관차 모형이 우뚝 서 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열차 모형을 보다가 바로 앞 연못 주변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철길숲은 철길을 따라 만든 만큼 직선에 가깝지만 다양한 나무와 꽃, 조형물, 주변 풍경으로 눈이 심심할 틈이 없다.

오벨리스크를 닮은 조형물, 역사와 플랫폼을 형상화한 조형물 등이 나들이객을 맞았다.

기차가 다니지 않으면서 기찻길 주변에 집이 있는 주민은 조용해서 살기 좋아졌다고 한다.

기차 소음이 사라진 데다가 집 주변에 공원이 생겨 수시로 산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찻길 옆 일부 단층 주택 주민은 대문이나 마당이 산책로와 붙어 있어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대잠동에서 양학동으로 이어지는 구간에는 나무가 적어 주변 자동차도로와 차단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대신 철길숲 바로 옆에 찻집이나 식당이 들어서 있어 허전함을 달래줬다.

양학동을 지나 대흥동 옛 포항역으로 이어진 길 주변에는 지붕이 부서진 빈집이나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빈 땅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수시로 교차하게끔 만들어 놓아 불편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산책로와 자전거를 구분하는 표시가 없어 사람과 자전거가 엉켜 안전사고 우려도 있어 보였다.

양학동 주민 최모(61)씨는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교차해 위험한 경우가 많다"며 "자전거를 탄 사람이 천천히 달리며 주의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추세를 반영하듯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시민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그러나 여느 공원과 마찬가지로 개 배설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그대로 둔 곳도 가끔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산책로에서 만난 한 시민은 "큰 개는 입마개를 하고 개 배설물도 좀 치웠으면 좋겠다"며 "자신들에게는 반려견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위험한 동물이라는 생각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책 나온 시민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옛 포항역 구간에 접어들자 기존 철길숲과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옛 포항역 철도부지 복합개발사업 구간 800m는 철길 위에 시멘트나 아스콘 대신 마사토를 깔았고 녹지나 공원을 제대로 조성하지 않았다.

시는 옛 포항역 땅에 문화시설, 근린공원, 공동주택 등을 만드는 복합개발을 진행하면 다른 철길숲 구간과 마찬가지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구분해 포장하고 공원도 만들 예정이다.

이곳에서 만난 많은 시민은 옛 포항역 역사를 철거한 것을 아쉬워했다.

한 시민은 "다른 지역은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는 노력을 하는 데 역사를 철거해버렸으니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옛 포항역에서 우현동 옛 미군저유소에 이르는 철도유휴부지 구간 도시숲은 2011년 조성됐다.

이곳은 철길 바로 옆에 오래되고 나지막한 주택이 그대로 남아있어 예전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끔 해줬다.

포항 철길숲 전체 구간은 6.6㎞로 주변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며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효자역에서 옛 포항역까지 구간은 1시간 정도면 걸을 수 있어 시민들이 산책하거나 나들이하기엔 적당한 셈이다.

집으로 가려는 데 자전거를 탄 2명이 지나가며 하는 말이 들려왔다.

"철길숲 여기가 완전 명소가 됐다 아이가. 사람도 많이 다니고 볼거리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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