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행 시도' 발각으로 배구협회로부터 1년 자격정지 '철퇴'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전설이었는데, 신의를 저버린 행동으로 배구판에서 강제로 퇴출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국 남자배구 왕년의 스타 출신으로 '명장' 반열에 올랐던 김호철(64) 남자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한배구협회(회장 오한남)로부터 '1년 자격정지' 중징계를 받은 것에 대해 한 배구인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배구협회는 19일 스포츠 공정위원회(위원장 김진희)를 열어 대표팀을 포기하고 프로팀 OK저축은행으로 이적을 시도한 김 감독에 '품위 훼손' 규정을 적용해 사실상 대표팀 사령탑의 지위를 박탈했다.

김호철 감독이 결정에 불복해 상급 단체인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지만 수용하면 대표팀 사령탑 자리를 내놓게 된다. 아울러 1년간은 프로팀 감독을 포함해 지도자로서 활동하지 못한다.

'배(대표팀)를 포기한 선장(감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배구 레전드'의 추락이다.

김호철 감독은 작년 3월 전임제 감독으로 계약하면서 '재임 기간에는 프로팀 사령탑을 맡지 않는다'고 약속했음에도 이를 어겼고, 배구협회에 협상 과정을 알리지 않은 건 물론 확인을 요청한 언론에도 거짓말을 한 게 결정타가 됐다.

프로팀으로 갈아타려고 한 것 못지않게 진실 어린 사과를 표명하지 않는 등 '배구 전설'의 명성에 걸맞은 처신은 없었다.

김 감독은 한국 배구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선수 시절에는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과 함께 최고의 '컴퓨터 세터'로 이름을 날렸다.

1975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 남자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금성통신에서 뛰다가 1981년 이탈리아 배구 세리에 A2(2부리그) 팀인 멕시카노 파르마에 입단해 그해 팀 사상 첫 우승과 1부 승격에 기여했다. 그 활약으로 1983년부터 2년 연속 이탈리아 리그 최우수선수 영예를 안았다.

1984-85시즌을 마치고 귀국해 현대자동차써비스 선수로 활약하며 세 시즌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1987년 이탈리아로 다시 건너가 1995년까지 선수로 활약해 현지 언론으로부터 '미다스 손' '마법사' 등의 별명을 얻었다.

김 감독의 지도자로서 경력도 화려했다.

2003년 11월 현대캐피탈의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며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이끌었다.

또 프로 원년이었던 2005년에는 사령탑 라이벌이던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현재 진천선수촌장)과 경쟁 끝에 정규리그 우승을 지휘했다.

2005-06시즌, 2008-09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지휘했고, 2005-06시즌과 2006-07시즌에는 소속팀을 챔프전 정상으로 이끌었다.

현대캐피탈의 통합우승(2005-06시즌)은 새로운 명장으로 떠오른 최태웅 감독을 비롯해 누구도 해내지 못한 기록이다.

2011년 시즌을 마치고 하종화 전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준 그는 2012-13시즌에는 러시앤캐시 감독을 잠시 지냈다.

2013-14시즌에 현대캐피탈로 다시 돌아갔고, 2014-15시즌 종료 후 최태웅 감독에게 자리를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국가대표팀에서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지휘했고 작년 8월에는 대표팀 전임제 감독으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팀 지도자 시절에도 '신의'를 저버린 행동으로 비난을 받곤 했다.

OK저축은행이 남자부 '제7 구단'으로 창단하던 2013년 김호철 감독과 초대 사령탑을 맡기로 약속했음에도 현대캐피탈의 감독으로 옮겨갔다.

OK저축은행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배신당했다'는 격앙된 표현을 쓰기도 했다.

김 감독은 또 한 번은 모 구단 감독을 맡고 싶다며 자신의 계약 조건을 제시한 뒤 이를 근거로 현대캐피탈로 찾아가 더 많은 금액에 계약하는 '이중 플레이'를 했다.

이 구단 관계자는 "김호철 감독을 영입하겠다고 구단주에게 보고하고 계약을 앞뒀는데 너무 황당했다"고 회상했다.

이번 대표팀 감독 포기 시도 사태에서도 김호철 감독의 처신은 종전과 다르지 않았다.

김 감독은 OK저축은행이 김세진 전 감독의 후임으로 석진욱 수석코치를 유력한 사령탑 후보로 점찍은 걸 알고도 '아직 감독이 정해지지 않았으면 내게도 기회를 달라"며 감독직을 먼저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봉이 1억2천만원인 전임제 대표팀 감독보다는 3억원 안팎을 받는 프로팀 감독이 더 탐났을 수도 있다.

김 감독을 잘 아는 배구인은 "김 감독이 OK저축은행 감독을 실제로 맡았을 경우 쏟아질 비난을 의식하면서도 갈아타기 시도를 한 건 더 좋은 조건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배구계에서 받은 사랑을 희생과 봉사로 돌려줘야 할 때인데 아직도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RNX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