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용수 온몸으로 맞으며 '악전고투'…일당 10만원 '비정규직'
야간·강풍 취약한 산불 진화 한몫…"야간진화 체제 변화 시급"

(인제·고성=연합뉴스) 이재현 양지웅 기자 = "8부 능선 그루터기에서 연기 발견. 잔불 조치 중인데 쉽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완전히 꺼 주세요. 이상∼"

동해안을 덮친 강원산불 닷새째인 8일 오전.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에서 재발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주민의 다급한 신고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온 이들은 바로 '특수재난 전문진화대'였다.

이들은 보호 안경과 안전모를 착용한 채 능선 곳곳을 누비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마다 물줄기를 뿌렸다.

진화 헬기, 소방대원과 함께 호흡을 맞춰 구석구석 남아있는 잔불을 제거해 자칫 큰불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고를 막았다.

30㏊ 산림을 태운 인제 산불은 45시간 만에 겨우 꺼졌지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특수진화대의 산불과 사투는 이날도 이어졌다.

사흘 밤낮을 태워 더는 태울 것도 없어 보였지만 이날 오전 바람이 다시 거세게 불면서 재발화 위험이 한층 커졌다.

인제 산불 현장에 재투입된 이광덕(67) 조장을 비롯한 특수진화대원들은 '연기 발견→진화 조치→지원 바람→이상 무' 등 무전을 연신 나누며 잔불 정리 작업을 벌였다.

이광덕 조장은 "작년 가을부터 겨우내 쌓인 낙엽이 발목을 덮었고, 땅속에 숨은 불씨는 사나흘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며 "이 불씨가 강풍과 만나 되살아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신속히 잔불을 잡아야 한다"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인제 산불은 지난 4일 오후 2시 45분 인제 남면 남전리 인근에서 발생했다.

이때부터 특수진화대의 산불과 사투는 45시간 이상 이어졌다.

강풍을 타고 산 아래 민가를 위협했다가 밤이면 방향을 바꿔 산 정상으로 향하는 산불 탓에 800m 고지를 하루에도 수도 없이 오르내렸다.

소방차와 소방장비가 진입하기 어려운 계곡과 암벽 지대 진화는 특수진화대원들 몫이다.

낮에는 진화 헬기가 쏟아내는 용수를 온몸으로 흠뻑 맞아가면서 오로지 삽과 쇠갈퀴를 이용해 산불을 잡는다.

밤에는 2∼3명이 한 조를 이뤄 산불을 따라 이동하면서 등짐펌프로 불을 끈다.

이광덕 조장은 "헬기가 공중에서 용수를 뿌리는데 위치를 잘못 잡으면 용수를 온몸으로 맞아야 한다"며 "밤에는 방연 텐트와 방연 마스크, 쇠갈퀴와 삽에 의지한 채 산불과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고 토로했다.

닷새 동안 이어진 산불 진화에서 특수진화대의 활약은 전국에서 달려온 소방대원들 못지않았다.

2017년 330여명으로 처음 발족한 특수진화대 활약상은 이번 강원산불을 통해 새롭게 각인됐다.

초속 20∼30m 강풍을 타고 급속 확산한 고성·속초 산불과 강릉·동해 산불은 야간인 탓에 진화 헬기가 이륙하지 못해 발생 초기에는 진화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인제 산불은 암벽이 많고 산세가 험한 곳에서 확산하다 보니 역시 특수진화대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웠다.

산소통과 산소마스크 등 전문적인 진화 장비 없이 방진·방연마스크를 쓰고 불길을 잡으러 달려가는 모습은 시민들에게 충분한 감동을 전했다.

하지만 혁혁한 전공과 비교해 이들에 대한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일당 10만원으로 6∼10개월간 일한 뒤 다시 채용 과정을 거치는 비정규직이다.

양양국유림관리소 소속 박모(60)씨는 "시간제 비정규직 근로자 신분이다 보니 전문 장비를 지급받지 못해 아쉬운 면도 있다"며 "이번 산불로 막대한 피해가 났음에도 특수진화대를 응원해 주는 분들이 많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시영 강원대학교 방재전문대학원 교수는 "야간에 강풍이 부는 이번 산불과 같은 상황에서는 특수진화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특수진화대 인력과 장비를 대폭 확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야간진화 체제 변화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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