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상존' 서부·중부전선 GP까지 개방…'해빙' 흐름 유지노력 일환인듯
'대북통보 및 동의·유엔사 승인 절차 없이 서둘러 정책 발표' 지적도
北 '9·19 군사합의' 이행 소극적인 상황서 추진하는 점도 논란 소지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정부가 3일 발표한 '비무장지대(DMZ) 평화둘레길'은 민간인 관광객이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상존하는 DMZ에 진입해 시범철수 GP(감시초소) 혹은 비상주 GP를 방문하는 관광코스다.

관광 프로그램은 군사분계선(MDL) 이남에서만 이뤄지는 것이긴 하다. 그러나 '9·19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이 DMZ 내 GP 11개씩을 시범철수하고도 여전히 북측 150여개, 남측 50여개의 GP에서 중무장한 장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어 관광객의 DMZ 진입에 따른 안전 문제가 숙제로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관광객들이 전방지역의 민간인통제선을 넘어 DMZ까지 들어섬에 따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군의 경계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이날 ▲경기도 파주에 있는 임진각에서 출발해 도라전망대를 경유해 시범철수 파주GP까지 방문하는 서부전선 코스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 전적비에서 출발해 DMZ 내 화살머리고지까지 방문하는 중부전선 코스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해 금강산전망대를 견학하고 복귀하는 동부전선 코스 등 'DMZ 평화둘레길'을 단계적으로 민간에 개방한다고 밝혔다.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은 DMZ 안으로 진입하는 코스이고, 동부전선은 DMZ 남방한계선(철책) 부근까지만 접근하는 관광코스다.

정부는 이달 말부터 GOP(일반전초) 철책선 이남의 고성지역(동부전선)을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시작하고, 파주(서부전선)와 철원(중부전선) 지역 둘레길도 방문객 접수를 위한 준비가 마무리 되는대로 이어서 개방할 예정이다.

당초 DMZ 안으로 진입하는 서부전선과 중부전선 코스도 이달부터 개방할 예정이었으나 관광객 안전 문제 등을 보완해 시행키로 했다. 서부전선과 중부전선 둘레길 개방시기는 5~6월로 예상된다.

국방부는 "군(軍)은 확고한 군사대비 태세를 갖춘 가운데 경계작전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방문객의 견학이 가능토록 조치했다"며 "개방되는 GP는 철거된 GP 또는 비상주 GP로, 현행 작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또한 "경호지원도 군단 특공연대에서 제공해 현행 작전부대의 부담을 최소화했다"며 "특히, DMZ 내 이동 때는 군 경호 아래 차량으로 단체 이동하는 등 철저한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관광객이 3중 철책이 설치된 DMZ 남방한계선을 통과해 GP까지 이동할 때는 차량으로 이동하지만, 철거 GP와 비상주 GP에 도착해서는 차량에서 내려 북측 지역을 조망하게 된다.

문제는 GP에 도착해 하차했을 때 여전히 운영되는 북측 GP 중화기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관광객이 방문하게 될 파주 철거 GP와 지금도 운영되는 가장 가까운 북측 GP와의 거리는 1.5㎞ 이내로 북측 GP에 배치된 고사총의 사거리 안에 들어온다.

아울러 DMZ 남북 장병이 지금도 수색·매복 작전을 수행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관광객이 DMZ 남측지역을 차량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군사적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GP 혹은 GOP(일반전초)에서 근무하는 국군 장병들도 관광객의 유출입에 따라 북한군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므로 경계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매일 전방의 북한군 동향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국방부는 이번 DMZ 평화둘레길은 지난해 체결된 9·19 군사합의 이후 남북 간에 쌓아온 신뢰를 전제로 한 사업이라고 설명하나 올해 들어 군사합의는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로 원활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

남북이 군사합의를 통해 4월 1일부터 화살머리고지에서 시작하기로 약속한 DMZ 남북공동유해발굴도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남측 단독으로 해당 지역에서 기초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 정부가 DMZ 평화둘레길 사업을 발표하기 전에 북측에 통보해 동의를 얻는 절차가 없었고, 정전협정에 따라 DMZ를 관할하는 유엔군사령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방부 당국자는 "우리 지역에서 안보 견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 통보할 의무가 있는 사항은 아니다"면서 "(북측 통보) 필요성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DMZ로 진입하는 서부전선과 중부전선 코스는 유엔사와 협의를 마치고 민간에 개방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당국자는 유엔사 승인 문제에 대해서는 "유엔사와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유엔사도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것만 확인되면 승인절차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전했다.

물론 국방부도 민간인 DMZ 관광의 안전을 100% 장담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군 당국은 DMZ 평화둘레길의 코스와 관광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안전 우려를 최소화할 것을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DMZ 평화둘레길 관광이) 100% 안전하다고 군인 입장에서는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GP 후방지역(DMZ 남측지역)이기 때문에 안전이 확보된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안전장비와 관련해서는 "민수용 방탄복과 방탄 헬멧을 경호차량에 휴대하고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군 당국은 관광객이 GP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릴 때는 방탄복과 헬멧을 지급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관광 프로젝트를 넘어 2월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국 주도로 한반도 긴장 완화의 분위기를 이어가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아울러 향후 북미협상의 방향을 고민하는 북미 양측과 국제사회를 향해 한반도 평화의 흐름에 지속 동참하기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목적이 내포됐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방부는 "남북 분단의 상징이었던 GOP 이북 DMZ를 일반 국민에게 최초로 개방하는 조치"라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향한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하기를 기대한다"고 DMZ 평화둘레길 사업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군 일각에선 DMZ 내 GP가 모두 철거되는 수준으로 9·19 군사합의가 이행되는 단계에서 시작해도 늦지 않을 텐데 정부가 너무 서둘러 DMZ 평화둘레길 관광을 시작하려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지난 2월 말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목표로 한 남북 및 북미 대화도 교착상태인 터에 굳이 DMZ 평화둘레길 관광을 현시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군의 한 관계자는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고(故) 박왕자씨가 북한군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을 교훈 삼아 DMZ 평화둘레길 관광을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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