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2018-2019시즌을 끝으로 30년간 정들었던 농구공과 작별하는 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의 임영희(39)는 은근히 재미있는 선수다.

조용하면서도 자기 할 몫은 똑 부러지게 하는 경기 스타일처럼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실에 들어와서도 조곤조곤한 말투로 엄청난 웃음 폭탄을 터뜨리고 나갈 때가 많았다.

18일 열린 용인 삼성생명과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패해 예상보다 이른 은퇴를 하게 된 그를 20일 서울 성북구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인터뷰하기로 하면서 임영희 특유의 재미있는 말솜씨를 당분간 듣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 서운하게 느껴졌다.

일단 위성우 감독 이야기부터 꺼냈다.

위성우 감독은 18일 경기를 마친 뒤 기자회견실에서 말 그대로 엉엉 울어 화제가 됐다.

그 경기를 끝으로 은퇴하는 임영희에 대해 말하다가 "나이 마흔이 돼서도 나한테 쌍욕 먹으면서 내색 안 한 것이 이 자리를 빌려 정말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며 "감독 생활을 하면서 영희라는 선수를 만나서 정말 즐거웠다"고 눈물을 흘린 것이다.

'위성우 감독과 지내면서 서운했던 순간이 언제였느냐'고 묻자 임영희는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매 순간 서운했어요"라고 답했다.

그는 "몇 번의 사건으로 서운한 게 아니고 매번 서운했다"고 설명하며 "저도 머리로는 감독님이 왜 그러시는지 의도를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받는 상처는 저도 사람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임영희는 "그래도 감독님과 지금까지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속상해하고 울고 그러면 감독님이 금방 오셔서 '미안하다'고 말씀도 해주시고 '내가 심했다'고 달래주셔서 또 다 잊고 (운동을) 하게 되더라"며 "그런 게 반복되면서 지금은 감독님 눈빛이나 표정만 봐도 어떤 생각인지 알게 되는 시간이 흐른 것 같다"고 말했다.

마산 산호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90년에 농구를 처음 시작한 그는 올해로 30년째 농구 코트에서 살았다.

마지막 경기도 끝냈고, 인터뷰 전날인 19일에는 시즌을 마치는 회식까지 했다는 그는 "휴가를 다녀오면 제 위치가 (숙소) 2층이 아닌 1층에서 생활해야 하니까 그때가 되면 실감이 좀 날 것 같다"며 아직도 은퇴가 확 와닿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번 시즌에도 팀의 에이스로 맹활약한 임영희에게 '2, 3년 더 할 수 있지 않으냐'는 주위 사람들의 말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그는 "2년 전부터 은퇴에 대해 생각을 했다"며 "작년에도 정규리그에 잘 못 하다가 챔피언전에서만 활약을 조금 했던 상황이라 좋은 모습으로 은퇴할 기회가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판단했다"고 은퇴를 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은퇴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역시 '운동선수로서의 절제'를 조금 덜 해도 된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는 "선수 때는 안 좋은 것을 먹으면서 몸에 미안한 느낌이 있었다"며 "그래도 이제는 술을 한잔해도 뒤에 생각을 안 해도 되니까 마음이 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스스로 "술은 잘 마시는 편"이라고 자신감을 숨기지 않은 임영희는 주량을 묻는 말에 "취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특히 컨디션이 좋거나 미리 속을 든든히 채우고 마시면 더 괜찮다"고 답했다.

2008-2009시즌까지 신세계에서 뛰고 2009-2010시즌부터 우리은행으로 이적, 나이 30이 다 돼서 전성기를 맞은 그는 "아무래도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것이 차이"라고 해석했다.

임영희는 "신세계에 있을 때 정인교 감독님이 제게 기대도 많이 하시고, 키워주시려고 노력하셨는데 그때는 언니들도 있고 (김)정은이처럼 잘 하는 후배도 있어서 제가 팀을 끌고 나가는 위치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우리은행으로 오면서 팀의 고참으로서 역할을 하려다 보니 책임감을 느끼고 경기력도 그만큼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는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위성우 감독이 처음 부임한 2012-2013시즌의 경기들을 꼽았다.

이미 3년 전에 은퇴한 변연하, 신정자 등과 동기인 그는 자신이 더 오래 전성기를 유지하며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사람 복'이라고 답했다.

임영희는 "농구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지금까지 만난 감독님들이 다 너무 좋으신 분들이고 제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지금까지 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 감독님들을 만난 것이 저의 복"이라고 몸을 낮췄다.

나이 30이 다 될 때까지 자리를 잡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에 비추어 비슷한 처지의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임영희는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르니 제가 무슨 말을 하기가 그렇다"고 망설였다.

그는 "저도 예전에는 거의 시즌마다 엄마한테 '그만두겠다'고 말하곤 했지만 지금까지 노력한 농구를 놔버리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후배들에게 '무조건 참고 이겨내라'고 말하는 것은 정답이 아닌 것 같지만 저는 그랬던 것 같다"고 자신의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요즘 후배들은 저하고 많이 생각이 다를 테지만 그래도 농구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끝까지 해볼 만한 일이지 않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여자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 600경기 출전의 금자탑을 쌓은 그는 "감독, 코치님은 물론 후배 선수들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며 "코치로 감독님을 보좌하는 것이 선수로 뛸 때보다 더 힘들 것 같다"고 지도자 데뷔를 앞둔 소감을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예전에는 휴가를 떠날 때도 운동복, 조깅화를 꼭 챙겨 갔지만 이번에는 '아, 운동복 안 챙겨도 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어 보였다.

벌써 예전이 된 선수 시절, 인터뷰실에서 기자들을 웃길 때의 웃음과 비교하면 약간의 아쉬움이 더 묻어나는 웃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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