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삶 살았으나, 끝내 일본 사죄 못 받아…남은 생존자 겨우 22명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광주·전남에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위안부 피해자 곽예남 할머니가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뒀다.

2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께 곽 할머니가 별세했다. 향년 94세.

지난 1월 28일 고(故)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33일 만이다.

이로써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2명으로 줄었다.

곽 할머니의 빈소는 전주병원 장례식장 VIP실 별관 특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4일 오전 9시이며 장지는 천안 망향의동산에 마련된다.

곽 할머니는 1925년 전남 담양에서 2남 4녀 중 3녀로 태어났다.

1944년 봄, 동네 여성 5명과 뒷산에서 나물을 캐고 있다가 일본군 순사에게 폭력적으로 연행됐다. 만 열 아홉의 나이였다.

중국으로 끌려간 곽 할머니는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일본군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세 차례씩 방에 있는지 검사를 받아야 해 도망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일본의 패전으로 풀려난 곽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구걸하는 삶을 살다가 안후이성 숙주에 정착했다.

60여년을 중국에서 살면서도 조선 국적을 바꾸지 않는 등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다.

이후 한 방송사의 공익예능프로그램과 한국정신대연구소 도움으로 2004년 국적을 회복하고 가족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기쁨도 잠시, 곽 할머니는 2015년 12월 폐암 4기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병환이 더 진전되지 않아 3년이 넘는 선물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런 곽 할머니를 둘러싸고 석연찮은 일이 계속됐다.

이른바 봉침 목사로 알려진 이 모 목사가 곽 할머니의 수양딸이 된 것을 두고 시민단체는 "곽 할머니를 이용하려는 것"이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SBS TV '그것이 알고싶다'는 지난달 23일 '봉침스캔들 목사의 수상한 효도' 편을 통해 곽 할머니에게 접근한 이 목사의 석연치 않은 행적을 방송한 바 있다.

한편,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페이스북을 통해 곽 할머니의 부고를 전하면서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중국에 머물면서도 고국의 국적을 버리지 못하고 힘든 생을 어렵게 버텨내셨지만 결국 일본 정부의 사죄 한 마디 받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의연은 "(곽 할머니는) 힘든 삶이었으나 온 힘을 다해서 살아내셨다"며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내신 삶, 잊지 않겠다"고 추모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광주나비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생전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훌훌 털어버리고 봄날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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