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수준 충족 못시킨 경연자가 결선…도저히 못 받아들여"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유럽의 한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피아니스트 임현정(32)이 부당한 심사 결과에 항의하며 중도 사임했다.

임현정은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에서 "심사위원 직무를 맡은 뒤 콩쿠르가 얼마나 비예술적인지를 봤다"며 "3일 만에 사임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함께 게시한 사직서를 통해 세 가지 불합리한 지점을 폭로했다.

우선 그는 악보를 기억하지 못해 몇 페이지의 악보는 아예 연주조차 않고 건너뛴 경연자가 결선 진출자로 뽑힌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간혹 논의되는 예술적 해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며 "그저 최소한 수준의 요구, 즉, 적어도 악보에 쓰여있는 전부는 연주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소한의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며 여러 번 실수한 경연자를 결선에 진출시킨 광경을 제 개인적 도덕심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그는 "해당 경연자가 콩쿠르 심사위원장의 제자라는 사실을 듣고 더더욱 경악했다"며 "비록 심사위원장은 투표할 권리가 없었지만 애초 그런 출전자의 서류를 허락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친밀감도 부당한 심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심사위원장과의 친밀함에서 그들(심사위원들)이 받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대회가 어떤 콩쿠르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콩쿠르 결과에 영향을 미치거나 또 다른 논란을 낳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소속사를 통해 "콩쿠르 이름을 말씀드리긴 어렵다"며 "해당 콩쿠르는 얼마 전 종료됐다"고만 전했다.

임현정은 "페이스북에 소감을 올린 뒤 한국에 계신 팬들과 학부모, 학생들부터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며 "그간 이러한 부당한 문제가 많이 쌓여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음악만을 바라보고 정진하는 많은 분에게 응원을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임현정은 주로 콩쿠르 수상 등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하는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2009년 유튜브에 올린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연주 동영상으로 이름을 알린 독특한 이력의 연주자다.

현재까지 59만여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한 이 영상 속에서 임현정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주를 펼친다.

2012년에는 세계적 음반사인 EMI클래식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해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이 음반은 빌보드 클래식 차트와 아이튠스 클래식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그는 2016년 프랑스 유명 출판사인 '알뱅 미셸'(Albin Michel)을 통해 음악과 영성에 관한 에세이집 '침묵의 소리'(Le Son du Silence)를 출간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로 알려진 출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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