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RNX뉴스] 박지훈 기자 = 현재 켈리포니아주 실마(Sylmar)에 거주하는 강화식 시인이 첫시집 ‘텔로미어’(Telomere)를 해드림출판사에서 펴냈다.

 
‘생명 연장선’을 의미하는 ‘텔로미어’는 류마티스와의 오랜 투병에서 유로(由路)한 고통이 수면 중의 꿈을 통해 치열한 삶의 욕구와 희망으로 승화된 작품들을 담고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대전대학교 황정산 교수가 ‘고통은 나의 것’이라는 화두로 작품해설을 붙였다.

◇텔로미어의 실체

몇 백 개의 시에서 시인은 자신을 찾아보려고 잠을 끊은 채 잠행을 탔다. 마음의 문턱에서 허우적거리던 부침 끝에서 촉촉하고 쫄깃한 흔적들을 찾아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였다.

시인은 한때 시가 주는 고단함을 끝내고 싶었다. 시를 쓰든 안 쓰든 그 고단함과 영원히 벗어나고 싶어 컴퓨터 파워를 누르고 잠을 청했으나 몸체에서는 여전히 작은 불빛이 반짝였다. 그럴수록 덮어버린 것들이 다시 속속 살아나고 애써 외면하면 할수록 더욱더 선명하게 다가와 ‘텔로미어’를 엮도록 시인을 재촉하였다.

시인은 류마티스 관절염을 30년 넘게 앓았다. 가까운 사람들이 버거워하는 묵은 시간 속에 번민으로 자리 잡은 장애지만 누워만 있지 않았다. 송곳으로 찌르는 아린 통증을 털어내려고, 아니 죽지 않기 위해 아픔을 팔고 시를 썼다. 그동안 아픔을 덜어낸 시간, 상처 받은 마음, 고통을 덜어낸 공간들이 이 ‘텔로미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통은 경고이고 존재의 건강성에 대한 간절한 바람

몸의 병이 깊어지면 그것은 고통이라는 감각을 통해 밖으로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고통은 잠재된 슬픔이 깊어져 나타난 현상이다. 때문에 몸과 마음의 고통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를 잠식하는 우울과 병을 감지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은 경고이고 존재의 건강성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이런 고통을 지우면서 살고자 한다. 고통보다 자극적인 쾌락을 통해 고통을 잊고 잠시의 안락과 평안을 꾀한다.

많은 대중 예술이 만들어 내는 오락거리가 우리에게 모르핀을 주사하는 것이라면 본격적인 문학은 이 쾌락의 중독성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고통을 마주하며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려는 강인한 정신이 바로 우리 시대에 제대로 된 시를 쓰려는 시인이 감당해야 할 정신적 자세이다. 바로 강화식 시인의 시들에서 그러한 정신의 일단을 볼 수 있다.

◇시인은 강한 생명력을 원한다

시인은 강한 생명력을 원하고 있다. 시인에게 세상은 고통이다. 그 짙은 고통 속에서 일어나는 꿈은 시인에게 희망이자 사랑이다. 다름 아닌 위안과 휴식을 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어둠 속 환한 달로 표현된 꿈은 시인에게 따뜻한 빛이었다. 그는 꿈을 끌어안아 어둠에 잠식된 자신을 치유하며 위안을 준다.

강물에 떨어진 달을 낚는다
물속에 빠진 나를 건진다

물결은 곧 잠이 들고
잠 속에
하얀 달이 또 있어

까만 가슴으로
그 달을 안는다.
- ‘바늘 없는 낚시’ 전문

◇드디어 빛을 붙잡고

꿈은 곧 깨기 마련이다. 잠에서 깨어나면 시인에게 다시 현실의 상처와 고통이 덮쳐온다. 현실은 그래서 시인이 고통과 투쟁하는 곳이다. 몸부림치는 가운데 시인은 강하게 텔로미어를 갈구하지만 상처는 자꾸만 늘어난다. 시인은 조각난 파편들을 끌어 모으고, 기계를 밀어 넣어 아픔을 도려내기 위해 노력한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통증 속에서 시인은 희미한 빛을 붙잡는다. 그곳에서 찾아낸 것은 본연의 모습을 가진 순수한 ‘나’의 모습이다.

어둠의
끝자락을 붙들고
안개빛
가는 숨을 쉰다
한때는
붉은 물이 용솟음친
그곳에
가쁜 호흡이 끌어내려
하얗게 서 있는 나를
발밑에 넣는다

-‘다시 찾은 나’ 일부

생명의 힘을 얻은 시인은 영역을 넓혀간다. 시인은 작은 빛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천착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자신이 딛고 선 땅을 바라본다. 눈을 들어 주위를 살핀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빛과 파도가 아느작아느작 바람을 보내고 방렬(芳烈)한 꽃은 4월의 풀기를 가져온다. 황금빛이 가슴 속 어둠을 몰아낸다. 옅은 안개조차 바람에 흩어진다.

그러나 아픈 역사의 시간은 기억으로 다시 돌아와 고통을 준다. 시인은 고통의 시간들을 돌이키며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실재하지 않는 고통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시인에게 깊은 응어리가 된다. 사랑하는 이들의 추억으로 ‘시간의 독’을 이겨낸 시인은 조금씩 회복된다. 가족들의 기억은 시인에게 아픔을 주었을 때도 있었지만 사랑을 키워내기도 했다. 고통은 이제 옅은 서러움으로 자리 잡았다. 그 안에서 그리움이 피어난다.

뜨거운 바람결이
틈새를 휘저으며
훈훈하게 피워내는
눈 꽃송이

눈 속의
새 꽃.

-‘미시간 호수의 바람’ 일부

고통을 집요하게 파헤치던 시인은 마침내 이를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흉터는 남게 되었지만 그것은 시인의 마음속에 다시금 사랑을 피워내는 거름이 되었다. 고통과 어둠을 몰아내고 한층 성숙해진 시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안도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고통들이 있다. 내 안에도, 세상 속에도 있다. 계속 괴로워하며 이를 외면할 수도 있지만 힘들어도 우리는 상처를 마주할 필요가 있다. 내 안에서 깨어 나와 세상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 시인이 보여주는 세상과 내가 공존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 것일지 생각한다. 스스로의 고통에 갇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을 마주하고 상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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